불륜에 의한 잔혹한 토막살인 사건
1927년 10월 27일 뉴올리언스의 한 가정부는 이웃인 Henry, Theresa Moity 부부와 세 자녀가 사는 아파트를 청소하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죽은 여성들은 Moity 형제인 Henry(당시 29세)와 Joseph(당시 33세)과 결혼한 부인들이었습니다.
Joseph의 아내 Leonidie(당시 28세)는 아파트 뒤쪽의 피가 여기저기 비산되어 있는 침실에 있는 닫힌 트렁크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Henry의 아내인 Theresa(당시 25세)는 앞 침실의 트렁크에 갇혀있었습니다.
둘 다 머리, 손가락, 팔, 다리가 잘려있었습니다.
수사관들은 트렁크 중 한곳에서 길이 2피트 정도의 사탕수수를 자를 때 사용하는 칼을 발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남편인 Joseph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즉시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Henry가 범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내에게 분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Theresa와 Leonidie는 Lonie로 알려진 동료에게 결혼생황이 불만족스럽고 더 나은 삶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말하고 다녔습니다.
살인사건 발생 몇주 전에 Joseph은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안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Joseph에게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루이지애나주 뉴이베리아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Moity 형제는 성장하여 지금의 부인들을 만났습니다.
Joseph과 헤어진 후 Leonidie는 Henry와 Theresa와 함께 같은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녀들은 Henry가 없을 때 다른 남자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Theresa는 그녀의 새로운 사랑인 Joseph Caruso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걷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Henry는 의혹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가 현재의 직업인 화가 이전에 정육점 주인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살인사건에서 발생된 시체절단의 정확성은 살인자가 큰 동물을 절단한 경험이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Henry는 사라졌습니다.
이틀간의 수색 끝에 당국은 그를 텍사스로 향하는 화물선에서 체포했습니다.
승무원은 그의 팔에 있는 문신을 통해 도망자인 Henry를 알아보았습니다.
하루 만에 Henry는 살인을 자백하고 혼자 행동했다고 말했습니다.
Joseph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살해 당일 Henry는 형사들에게 Theresa가 Lonie와 함께 마을에서 밤을 보낼 계획이니 집에 머물면서 아이들을 돌보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는 술집에 들렸고 저녁 일찍 술에 취해 집으로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칼을 샀습니다.
잠시후 그녀들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Henry와 가족들은 식사를 하러 집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변에 사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Theresa에게 Joseph Caruso와 달아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녀들과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Henry는 아내의 불륜에 대해 분노가 폭발하였습니다.
그는 Theresa의 침실로 가서 그녀를 마구 찔렀습니다.
그 후 그는 Leonidie를 공격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시체를 토막내서 트렁크에 집어넣고 집을 나왔습니다.
내가 Joseph Caruso를 손본다면 아내처럼 큰 조각이 아닌 작은 조각으로 자를 것이라고 그는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소세지 공장을 통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겠습니다. Joseph Caruso가 내 아내를 빼앗아갔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Henry는 각각의 살인에 대해 별도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Theresa 살인 혐의 재판에서 검찰은 살인이 정신이상이 아니라 질투와 술에 의한 행위였으며 Henry는 교수형을 당할 만하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변호인은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그가 살인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정신병에 기인한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배심원은 Henry에게 유죄를 인정했지만 판사에게 자비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겨우 교수형을 면했습니다.
Leonidie 살해 혐의로 두 번째 재판에서 Henry는 또 다른 종신형에 대한 대가로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해마다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그는 모범수감자였으며 상당한 자유를 가진 수탁자가 되었습니다.
1944년 8월에 그는 그 자유를 이용하여 탈옥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20개월 동안 도망을 다녔습니다.
경찰은 1946년 4월 세인트루이스에서 마른 체형의 사람이 도망자 Henry인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는 다시 감옥에 갇혔고 다시 사면을 신청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후 루이지애나 사면위원회는 예상밖으로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를 석방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그곳에서 화가로서의 일을 찾고 다시는 뉴올리언스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956년 1월 한 여성이 로스앤젤레스 호텔의 사무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총에 맞았어요." 그녀는 숨을 헐떡였습니다.
앨버타 오렌지(당시 35세) 여성은 그녀가 남편이라고 말한 Henry Moity와 함께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부부는 다투고 있었습니다.
오렌지는 그에게 옷을 사기 위해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가슴에 총을 쐈습니다.
그녀는 운좋게도 생명을 건졌고 그는 살인 미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Henry는 폴섬 교도소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1957년 12월 31일에 뇌졸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불륜이라는 감정의 배신감으로 인해 이성을 제어할 수 없는 폭발적으로 고조된 감정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부인을 과도하게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과 감정이라는 양극단에서 진자추 운동을 하는게 인간심리라지만 과도하게 감정적인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파국을 맞이한다는게 인류 역사의 빅데이타가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거 같습니다.